CISHKOREA-Korean National Committee of Historical Sciences


 

 
작성일 : 13-04-30 11:59
제7회 한일역사가회의 주제 (2007. 11. 17 - 18): 서울
 글쓴이 : cish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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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역사학 한국위원회는 2001년 이래로 다음과 같이 여섯 차례 한일역사가회의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제1회: 1945년 이후의 한일양국의 역사연구동향 (서울)
제2회: 세계사 속의 근대화, 현대화 (東京)
제3회: 내셔녈리즘:과거와 현재 (서울)
제4회: 역사연구에서의 새로운 조류: 정통적 지식의 역할을 중심으로 (東京)
제5회: 역사에서의 종교와 신앙 (서울)
제6회: 역사가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논해야 하는가? (東京)

금년 제7회 한일역사가회의는 "反亂인가? 革命인가?"를 주제로 2007년 11월 17일과 18일 양일간에 개최됩니다.

會議主題 選定의 理由

古代史에서 최근의 歷史에 이르기까지 政治․社會․經濟․文化的으로 旣存體制를 타파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하려는 부단한 도전이 있었다. 新石器革命에서 産業革命, 全體主義革命에서 脫植民主義運動이나 20世紀의 情報革命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의 樹立은 삶의 旣存 틀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社會 秩序 전반의 根本的 변혁 또는 문명사적 轉換을 결과하였다.
무엇보다도 歷史에서 가장 劇的이며 주목되는 것은 旣存社會體制의 전체적인 혹은 部分的인 붕괴를 수반하는 政治的激變이나 社會的 變革일 것이다. 政治社會的으로 낡음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平和的으로 이루어지기보다 暴力性과 過激性을 동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歷史上 革命의 進行은 몇 가지 類型을 따라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暴力化 過程이 社會的으로 광범하고 그 결과가 歷史的으로 지속되는 ‘革命’이 있는가 하면 大衆의 불평불만의 爆發이 단순한 政權交替를 가져오는 制限的인 쿠데타 또는‘反亂’이 있었다. 또한 公權力이 變革을 주도하여 대중의 삶을 바꾸는 社會的 變革이 있는가 하면, 대중의 결집된 힘으로 社會的 不條理를 타파하고 政治構造를 바꾼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類型의 相異性에도 불구하고 暴力 事態를 초래한 原因에는 共通的 特性이 발견된다. 革命은 보통 소수의 指導者들이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여 專制, 腐敗, 社會政治的 不條理에 대항하기 위해 進步, 自由, 社會正義의 기치 아래 수행되었다. 指導層의 無能, 社會的 不安定, 經濟危機, 戰爭의 敗北 또는 유사한 사건이 革命의 발발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극히 사소한 사건이 빌미가 되어 全 社會的인 破局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原因이 革命의 必要充分條件은 아니었다. 즉, 無能, 腐敗, 敗戰이 반드시 革命 事態로 발전된 것은 아니었으며 더욱이 革命 主導層의 能力이나 計劃實行의 한계로 인해 단순히 無政府狀態가 초래되거나 혹은 애당초 의도한 목적에 반하는 反革命的 獨裁體制가 수립되기도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自由와 社會正義의 이름으로 혁명적 조치를 취하는 煽動政治家들이나 簒奪者들이 있었다.
革命은 世界史의 어느 部分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비근한 예는 中世의 韓國이나 日本 그리고 유럽의 여러 農民反亂이나 農民戰爭에서 찾을 수 있다. 근세 이후 現代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많은 反亂과 革命이 일어났다. 19세기 유럽사의 近代市民革命과 20세기의 共産革命, 근대 중국의 太平天國의 亂과 辛亥革命, 韓國의 東學農民戰爭과 壬午軍亂, 甲申政變이나 13-14세기 日本의 政變과 內亂이나 17세기 九州 그리스도敎徒들의 反亂, 戊辰戰爭, 明治維新 등이 모두 같은 범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세기의 아시아-아프리카의 脫植民主義運動 역시 政治 社會的으로 革命的 過程을 겪었다는 점에서 고찰대상이 될 수 있다.
  反亂이나 革命에 관해서는 社會科學이나 文化硏究 또는 政治社會哲學的으로 많이 연구되었다. 우리는 이번 歷史家會議를 통해 革命과 反亂을 政治社會史的으로 史實에 즉해 검증함으로써 그 歷史的 意味를 성찰하려는 것이다. 革命理論이나 槪念定義를 추구하기보다는 比較史的 方法에 따라 反亂과 革命의 原因, 段階, 主導層, 背景勢力, 成敗, 反革命 등 問題에 더 무게를 두고 다루게 될 것이다.

세션 區分 및 內容

제1세션: 東學革命과 明治維新     사회: 柳永益 (延世大)
이 세션의 발표와 토론은 한국사와 일본사에서 政治的 激動과 社會的 變革을 초래한  근대사의 현상으로 각각 대표적으로 동학혁명과 명치유신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두 사건에는 배경, 원인, 진행 및 결과에서 전적으로 유사성이 없으나 다만, 동학혁명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운동이었던 반면 명치유신은 위로부터의 혁신운동이라는 대조적인 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학혁명과 명치유신을 초점으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두 사건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서의 連續性과 不連續性의 문제를 고찰하려는데 세션의 목적이 있다.

발표: 許東賢 (慶熙大)  "밑과 위로부터의 武裝改革運動: 東學農民烽起와 메이지유신의 比較史的 考察"
토론: 趙景達 (千葉大)
발표: 미야지 마사도(宮地 正人: 東京大)   "明治維新의 變革性"
토론: 金光玉(釜山大)


제2세션: 文人政權과 武士政權      사회: 閔賢九 (高麗大)
문인정권은 고려 및 조선의 시대 일반의 특성이며 무사정권은 가마꾸라바꾸후(鎌倉幕府) 이래 일본사를 특징짓는 역사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 전기에서는 儒敎의 政治理念이 이른바 文治의 傳統을 세우고 한때 12세기에 武臣 政權이 성립되었으나 불과 1세기에 불과했으며 고려사회의 일관된 전통이었으며 이는 조선시대에 더욱 강화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른바 헤이안(평안)시대 후기에 律令國家體制가 붕괴되고 武士階級이 封建日本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그 이래로 武士傳統은 일본사회를 특징짓는 지배적인 특성이 되었다. 이 세션에서는 이러한 政治文化의 패러다임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政治社會史의 變革 뿐 아니라 文明史的 轉換을 고찰의 범위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발표: 鄭萬祚 (國民大)     "조선시대의 士林政權과 國政運營"
토론: 가사야 가즈히꼬(笠谷 和比古: 國際日本硏究센터)
발표: 세끼유끼 히꼬(關幸 彦: 鶴見大) "武夷와 武威: 東國王權論의 可能性을 중심으로"
토론: 南基鶴(翰林大)

제3세션: 中國에서의 反亂과 革命      사회: 曺秉漢 (西江大)
中國史에서의 易姓革命의 思想이 反復的 王朝循環을 合理化했으나 대체로 14세기 중기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질서와 사회는 안정되었으며 急激한 社會變動이나 政治的 變革은 顯著하지 않았다. 이른바 ‘傳統안의 變化’라는 歷史觀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유럽 열강의 침입이 본격적으로 되고 阿片戰爭을 시작으로 중국 안에서의 抵抗과 反亂은 빈번해졌다. 太平天國運動을 비롯해 捻匪, 이슬람, 苗族의 난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淸日戰爭의 패배를 계기로 改革과‘變法’운동이 점차 가속되었다. 19세기 말의 급진적 개혁이 中國政治를 근대화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개혁 主導權이 大衆으로 넘어가 義和團이 蜂起했으며 反帝國主義運動으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梁啓超, 孫文 등 엘리트에 의해 革命運動이 본격화되고 마침내 辛亥革命은 발발하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경제, 정치, 사회, 사상, 문화에서의 광범한 변혁이 시작되고 1949년 共産主義革命에까지 이르렀다. 이 세션에서는 중국에서의 반란과 혁명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중국에서의 혁명운동의 일반적 특성을 도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발표: 裵京漢 (新羅大)       "近現代 中國의 反亂과 革命"
토론: 다까하시 히도시(高橋 均: 東京大)
발표: 미조구찌 유조(溝口 雄三: 東京大)   "反亂없는 革命"
토론: 金衡鐘(서울大)

제4세션: 綜合討論     사회: 金榮漢 (西江大)
이번 회의에서는 東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국의 政治社會的 變革運動까지 대상으로 하여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었으나 最終的으로 마무리하는 綜合討論에서는 더 視角을 넓혀 世界史的인 관점을 도입하여 전반적인 논의를 한다. 종합적인 정리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아시아의 역사적 대전환을 유럽의 革命과 反革命과 대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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